FOOTBALL TALK/축구 더비 시리즈

[유럽 축구 더비] 북런던 더비의 역사: 아스날 vs 토트넘

오소리우스 2025. 2. 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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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소리우스 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유럽 최고의

더비 매치 탄생의 이유와

스토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 첫 시간으로

아스날 대 토트넘,

토트넘 대 아스날의

북런던 더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BBC

북런던 더비는 영국을 넘어

유럽 전역에 알려진

유명한 지역 라이벌 매치입니다.

북런던 더비의 주인공인 두 팀은

런던을 연고로 한

아스날과 토트넘 핫스퍼

입니다.

 

북 런던 - 잉글랜드

북런던에 위치한 두 팀

 
 

 

양 팀의 지역 라이벌 의식은

1913년 아스날이 토트넘의 옆으로

연고 이전 하면서 불이 붙었습니다.

양팀이 가까워지면서

많은 해프닝에 얽히게 되면서

두 구단의 관계는

나빠졌습니다.

 

사건 1 - 아스날의 연고지 이전

" 1913년, 아스날의 구단주 헨리 노리스에 의한 아스널의 북런던 이전 "

울위치 아스날 - 엠블럼 / 출처 - GOOGLE

 

북런던의 아스날FC 있기 ,

아스날은 울위치 아스날이라고 불렸습니다.

아스날 최초의 연고 지역은

영국 동남부 울위치 지역이었습니다.

울위치는 낮은 인구 밀집도,

그리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팬들의 발길이 드믄 구단 이었습니다.

 

당시 축구 구단의

주요 소득원은 입장권 수익

이었기에, 울위치 아스날은

재정난을 심하게 었습니다.

그로 인해 1913, 2부로 강등된

울위치 아스날은 연고지 이전 이라는

결단을 내립니다.

목적지는 바로 북런던의 하이버리.

당시 토트넘의 구장

화이트하트레인과 불과 10km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토트넘은 울위치 아스날의

연고 이전을 반대 했습니다.

 

하지만 울위치 아스날은

연고지 이전을 강행 해,

껄끄러운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연고 이전과 동시에

울위치 아스날은

연고지였던울위치 빼고

지금의아스날FC’ 구단 명을 바꿉니다.

 

사건 2 - 승격 스캔들

"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1부 리그로 승격, 1부 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의 강등 사건 "

1914/15시즌,

토트넘은 1부리그 20위로

강등 확정 되었습니다.

그 후에 발생한 1차 세계 대전 때문에

리그는 1919 까지 중단 되었습니다.

출처 - British archive

전쟁이 끝나고 축구 리그 재개 시점에서,

리그 측에서 1부리그 참가 팀 수를

20팀에서 22팀으로 증가 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투표를 통해

승격팀을 결정하기로 했기에

2부리그 상위팀들, 그리고 토트넘은

자신이 1부에 승격해야 하는 이유를 주장 했습니다.

 

1914/15 시즌 2부 리그 5등을 기록했던

아스날도 승격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1914/15 영국 풋볼리그 1부, 2부 순위 / 출처 - Wiki

투표 결과

토트넘은 승격에 실패 했고

아스날은 승격하면서 팬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토트넘 그 서포터들은

과거 횡령의 이력이 있던

아스날 회장의 로비 의혹을 주장 

했습니다만, 로비의 증거는 없었습니다.

1919/20 영국 풋볼리그 순위

사건들로

클럽간 라이벌 의식은

더욱 강해졌고 지금까지

팀의 경기는 치열하고 공격적입니다.


팀 간 이적 선수

많은 갈등과 경쟁,

그리고 증오심으로 인해

두 팀 간의 선수 거래는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하고 기막힌

방법으로 팀 간 이적을

강행 했던 선수들이 존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솔 캠벨 [ 토트넘 > 아스날 ]

토트넘로컬보이 이자

주장 이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수비수,

캠벨 토트넘 팬들을 배신하고

아스날로 자유계약 이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핵심 자원이자

주장이었던 캠벨은 리그 우승을 갈망했기에

토트넘과의 재계약을 주저했습니다.

세리에, 맨유, 리버풀 등에서

이적 제의를 받는 상황에서도

아스날로의 이적은 절대 없다고

선사했던 캠벨이지만,

아스날로 갔습니다. 

캠벨은 그의 바램 대로

아스날에서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포츠머스로 떠났습니다.

윌리엄 갈라스 [ 아스날 > 토트넘 ]

갈라스는

캠벨과는 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첼시에서 이적 해 온

윌리암 갈라스

아스날에서 토트넘으로

FA 이적 했습니다.

 

베르캄프의 10번을 이어 받은

수비수라는 다소 부정적인

타이틀과 그의 악동적 행동 때문에

캠벨 만큼의 배신감은 없었습니다.

 

4년간 아스날맨으로 살아왔지만,

그의 행실 때문인지, 아스날 팬들은

오히려 나갔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엠마뉴엘 아데바요르 [ 아스날 > 맨체스터 시티 > 토트넘 ]

토고의 공격수,

엠마뉴엘 아데바요르

앙리의 파트너로써 아스날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피지컬을 바탕으로

공격을 풀어나갔던 아데바요르는

3년간 아스날 생활 끝에

우승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긴

맨시티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맨시티 소속으로 아스날 팬들에게

가했던 그의 기행적인

역주행 세레머니 덕분에

그의 이미지는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맨시티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토트넘으로 입단하면서

아데바요르를 항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토트넘에서의 선수 커리어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 바샥셰히르

카이세리스포르, 클럽 올림피아 등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지난 2023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축구 선수 커리어를 끝냈습니다.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 입니다.

서로의 성적에 민감하고

해당 팀 출신 선수면 모두들 SNS에

응원 글을 게시할 정도로 경기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되는 경기입니다.

 

그래서 북런던 더비는

그 어느 더비 경기 보다

더 치열합니다.

 

이상 유럽 축구 최고의

더비, 북런던 더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더욱 재밌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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